■니 신 전 오타루 영빈관(옛 아오야마의 저택, 구 아오야마 별장)는 아케치 시대~다이쇼 시대에 1대, 2대에 걸친 청어 잡이에서 큰 부를 이룬 아오야마가의 별장에서 1,500평에 건평만 190평으로 2층 목조 건물과 영빈관, 정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뛰어난 미술적 감각을 갖고 있던 2대째 마사요시 씨가 당시 17세이던 딸 때문에 세운 건물로 예술성이 높은 별장을 짓는 데 1918년부터 6년 반에 걸친 공사 끝에 1923년에 완성시켰다.
▲귀빈관 입구 목판담 아오야마 별저는 홋카이도를 대표하는 니신고덴(청어전)으로 1985년 오타루시 <역사적 건조물>로 지정됐고, 2010년에는 국가 유형문화재로 지정됐다.
▲ 수령 100년 이상의 소나무와 각종 꽃이 관람객을 맞고 있다.오른쪽의 기와 지붕의 건물이 구 아오야마 별저에서 정면의 건물이 영빈관으로 일본식 식당이 병설되었다.아오야마인 1914년에만 1만석(7500톤)이상의 어획량을 기록했지만 이를 지금 시세로 환산하면 약 25억엔에 이른다고 한다.이처럼 청어 잡이를 통해서 번 돈으로 저택을 지면서 청어 저택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 정면 현관을 들어서자 바로 옆에 청어 잡이가 한창이던 당시의 영화를 그리워하는 소화 시대의 명곡”이시카리 만가”과 관련이 있는 곳이라는 기념비나 작사가 직접 쓴 노래비가 세워졌다.아오야마 별저는 2층의 본채 건물을 중심으로 3방향에 정원이 있는 가족만이 보기 위해서 만든 연못이 딸린 정원과 소나무와 돌로 된 중간 정원 등 부지 내에 몇가지 정원이 조성되고 있다.장지문의 손잡이에 당시는 보석과 같은 가치를 갖고 있던 칠보를 사용하고 바닥에는 옻칠을 하고 장지와 천장에는 카노오파의 유명 화가의 그림이 그려지는 등 집 전체가 미술관처럼 호화롭게 장식되어 있다.아오야마 별저의 구성은 중심으로 안채와 그것에 이어지는 2층의 떠나고 앞마당을 끼고 세워진 문서 창고이다.
▲ 아오야마 별저의 중심 건물인 안채 본관 정면은 남쪽으로 향했고, 현관은 동쪽에는 손님용, 서쪽으로는 가족용으로 구분했으며 손님 용의 현관 옆에는 건물 내에서 유일하게 서양식 접객실이 있다.안쪽에 위치한 마당에는 영빈관의 자랑인 마키 장단과 작약, 벚꽃, 매화, 진달래, 수국이 계절마다 피어 있다.매년 5월 하순부터 6월 하순까지 여기서<목단 축제>를 개최하지만 약 400개의 마키 장단과 작약이 정원을 채운다.안채의 건물 내부에는 청어 잡이가 한창일 때의 어업 기구와 생활 도구, 사진 등 자료가 전시되고 있다.
▲건물 내부는 다다미 6~15장 규모의 방이 18개로 각 방은 다른 분위기로 마무리됐다.
▲ 오타루 귀빈관 1층 홀에는 홋카이도 출신 일본 화가들이 꽃을 주제로 그린 153장의 천장화가 그 화려함의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 천장화 외에도 근대 일본 화의 기반을 이룬 카노오파의 영향을 받은 화가들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영빈관 내에는 화실 160명, 양실 15~5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레스토랑이 운영되고 있지만, 여기서 판매하는 청어 덮밥과 니싱소바은 아오야마 별저의 명물 요리로 정평이 나 있다.청어를 가볍게 말린 뒤 인공 조미료를 안 쓰고 큰 솥에서 찐 뒤 특제 소스에 삶아 만든 청어를 밥이나 옆에 태우고 먹는 음식으로 사발은 원화로 약 2만원 정도에서 메밀은 약 1만원 정도다.생선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 분이라면 적응하기 어려운 맛이다?
▲귀빈관 내부 레스토랑 화실·연회장▲귀빈관 레스토랑의 명물요리인 <청어찬합세트>▲귀빈관 레스토랑의 명물요리인 <청어찬합세트>▲ 파노라마 전망대에는 별도의 전망대 건물이 아닌 전망 좋은 곳에 바다를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곳으로, 비석과 작은 표지판 하나가 전부다.”파노라마 전망대”이란 이름 그대로 눈앞에 에메랄드 빛 바다가 360번에 퍼진다.전망대 왼쪽에는 호텔의 이슈 로스 오타루가 아카이의 해안선과 멀리 샤코탄 반도의 해안선이 보이고 오른쪽에는 다카시마 곶의 날씨 산정대와 니시 저택, 멀리는 승한별 케와 마시케 케까지 들어온다.▲전망대 왼쪽 노이슈로스 호텔 아래 붉은 암석 절벽과 코발트 블루 바다가 펼쳐진다. 이곳 절벽은 암벽 등반을 즐기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라고 한다.▲전망대 오른쪽으로 다카시마곶 높은 곳에 선 일기산 등대와 붉은 지붕의 이향전, 그 아래 오타루 수족관 해수공원이 내려다보인다.▲ 파노라마 전망대에서는 매년 4월 하순부터 8월 하순까지 맑은 날에는 이런 환상적인 석양이 보인다.과거 청어 잡이 전성기 때 청어의 생산액은 홋카이도 어업 총 생산액의 70%를 점유하는 청어의 풍작, 흉작이 홋카이도 경제에도 큰 영향을 미칠 정도였지만, 1897년 95만톤으로 최고 어획량을 기록한 뒤 점차 줄1950년경부터는 청어 잡이가 거의 사라졌다.2000년대 초부터 다시 청어가 조금씩 잡아 시작했지만 과거에 잡은 청어는 그 종류가 다르다고 한다.오타루·숙진는 에도 시대부터 청어로 발전한 지역에서 청어 미소의 산업 유산이 유일한 곳에 남아 있다.숙진이 일찍이 풍부한 청어 소라고 번영을 누린 지역이어서 전망대 중앙에는 에사시 일본 민요의 이름인 노래비, 전망대의 끝에는 홋카이도 빈복 민요 비석도 세워졌다.▲추분절 민요명가비▲비석에는 유명한 하마절 문구가 새겨져 있다. 항구에 전해지는 레퍼토리는 거의 어느 나라나 비슷한 것 같다. 이 비에도 에차시에 사는 한 여성이 사랑하는 사람이 대장로와 다카시마 어장에 일하러 갔다가 돌아오지 않자 찾으러 나갔으나 적단곶의 큰 바위 때문에 가지 못하고 눈앞 어장에서 일하면서 사랑하는 사람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다렸다는 이야기가 적혀 있다.▲ 전망대 왼쪽 절벽 위에 세워진 고급 호텔”호텔의 이슈 로스 오타루”전망대 바로 위에는 2008년 MBC에서 방송된 ” 달콤한 인생”이라는 드라마에서 주인공 오·연수 씨가 훗카이도에 혼자 여행하고 묵었던 호텔로 등장한 노이슈 로스 오타루가 서있다.각 객실마다 노천탕이 설치되는 고급 호텔에서 지명도는 높지 않지만 전망이 뛰어나고 가격은 매우 높은 편이다.주소:오타루 시. 나루터 3가(오타루에서 차로 20분)■ 날씨 산정대다 카시마 곶의 고지대에 설치된 흰 바탕에 오렌지 색 띠가 그려진 높이 10m의 등대로 겨울에 눈이 많이 쌓였을 때도 바다에서 잘 보이도록 1968년에 지금과 같은 색으로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1883년 최초의 건축 당시에는 흰색 육각형 목조 등대했지만 1953년 현재의 탑 콘크리트 등대로 개축됐다.등대의 불빛이 바다 멀리 19마일(35㎞)까지 벌어졌고 항로를 이끌고 있다.▲ 다카시마 곶의 끝의 언덕 위에 선 날씨 산정대는, 홋카이도에서 로사 천 미사키 등대에 이어 만든 역사 있는 등대에서 1957년에 공개된 등대지기 부부의 이야기를 그린”기쁨도 슬픔도 한·세월”라는 영화의 라스트 신이 이곳에서 촬영됐다고 한다.등대까지 산책길이 있는 발등에 절벽이 일고 있어서 조금 긴장하는 길이지만 360번에 펼쳐진 환상적인 전망만은 정말 멋진 곳이다.매년<숙진 청어 축제 기간 동안만 등대 내부를 무료로 개방한다.▲등대에서 사용한 불빛등대 내부에는 일본과 홋카이도의 등대 역사에 대한 자료와 사진 설명, 등대에 사용된 조명 등도 전시하고 있다. 무료 개방 시기에는 등대 불빛이 회전하는 맨 위까지 오를 수 있다.▲ 날씨 산정대에서 정면을 내려다보며 토도와 오타루 해안에는 다수의 강치가 살고 있지만, 운이 좋으면 등대 앞 바다에 물개장에 우뚝 솟은 토도 바위에 많은 강치가 오르고 휴식을 지는 모습도 보인다고 한다.■ 오타 모이 해안(옛 오타 모이 유원지 경내)대전 모정 해안은 오타루 시 북부에 있는 다카시마 곶에서 시오야까지 약 10km해안선의 일부에서 니세코·샤코탄·오타루 국정 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어 기암 절벽이 펼쳐진 해안선을 유람선을 타고 바다에서 바라볼 수 있다.오타 모이 해안을 돌해상 유람선은 오타루 제3부두 관광 선착장에서 출발하고 4월 하순~10월 상순까지 운행한다.▲ 오타모이 해안 절경, 오타모이에서 숙진까지 이어지는 약 9㎞의 자연 탐방로에는 단애 절벽을 따라 적단 방면을 바라보며 걷는 약 200m의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오타모이 해안은 여름에는 해수욕장이 개장하여 석양 명소로 유명하지만 관광객의 발길이 많지 않은 오타루의 숨겨진 비경이다. 오타모이는 ‘모래가 들어오는 강’이라는 뜻의 아이누어에서 유래한 말로 바닷가가 바위밭이라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오타모이는 오타루에서 유일하게 카다카나의 지명이다.▲ 오타 모이 해안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일몰 절벽 비탈의 중간 쯤에 지장이 모시고 있는<오타 모이 연명 지조송>가 있어 옛날 샤코탄 바다에 몸을 던진 임산부의 시신이 이곳으로 유배되고 지장 존에 그 유해를 모셨다는 얘기가 있어서인지 옛날부터 아기를 잘 내다보면 알려지면서 신앙의 땅으로 찾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그러나 2006년의 암벽 붕괴로 지장 존까지 산책로가 폐쇄되면서 현재는 직접 못 가고 유람선에서 바라보기만 할 수 있다.▲ 아기를 잘 치고 주려고 하는 오타 모이 연명 지조송 1930년대 이곳에는 오타 모이 유원지로 해서 식당, 연회장, 스모 경기장을 갖춘 대규모 여관 류구 전각이 있었는데, 당시 이곳을 찾는 사람이 하루 1천명에 이를 정도로 큰 휴양지였다고 한다.류구 건물은 당대에서 가장 유명하게 된 활기를 띠었지만 아직 10년도 지나기 전에 제2차 세계 대전 발발로 어쩔 수 없이 영업을 정지하게 됐다.당시 류구 각의 건물은 교토의 아오키사에 맞먹는 정도였다고 한다.전쟁이 끝나고 재개 준비 중이던 1952년 안타깝게도 화재로 전소한 뒤 재개되지 않았다고 한다.지리적으로 절벽 위에 있어 소방 시설도 완비되지 않자 건물 전체가 불타고 흔적 없이 사라졌다.▲ 해면으로부터 높이 약 30m절벽 위에 위치한 류구 각 자리에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다.바다 쪽으로 돌출하고 있는 류구 전각 뒤의 일부에 멀리 푸른 바다가 보이는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그러나 산책길 폐쇄로 현재 이곳까지 갈 수 없다.오타루시는 이곳을 재건하는 예산도 없고 암벽 붕괴 위험이 더 있다고 판단하고 재건을 포기했다고 한다.이런 멋진 경관을 언젠가 다시 보게 되기를 바란다.▲바다로 돌출한 흔적에 세워진 전망대